안녕하세요
일레부입니다.
오늘은
성공한 사람들은 남 탓과 불평불만을 안 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삶 속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탓하고 원망하기보다
잘 받아들여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삶이 얼마나 위대하게 결론지어지는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레츠 기릿~!
1606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라이덴(네덜란드의 대학도시)에서 태어난 렘브란트는 부유한 가정의 아홉 번째 자녀였습니다.
그는 라이덴 대학교에 등록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일찍 대학을 떠나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환경을 활용하고 예술을 선택하여 22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 타고난 기회를 잘못된 상식으로, 틀린 고집으로 놓치기도 합니다.
10대 시절일수록 그런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렘브란트는 부유한 환경과 예술 활동을 지지해주는 부모의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을 둔 행운과 더불어 시대도 렘브란트를 도왔습니다.
번창하는 도시인 암스테르담은 1631년에 그에게 그림을 그리기 더없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 번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렘브란트는 도시의 주요 초상화 화가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꽃길만 걷던 렘브란트는 이후 아내와 세 자녀를 잃는 등 삶의 가혹한 시련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여기서 좌절하지않고 그는 새로운 활력으로 붓을 휘두르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신이 자신에게 주는 이 시련을 원망하며 시간을 흘러보내지 않고 예술을 안식처 삼아 더욱 혼을 불태웠습니다.
개인적인 비극에 직면한 렘브란트는 강인한 회복력으로 이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가 훗날 예술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비극의 슬픔 뒤에도 재정적 불안정은 그의 노년의 삶을 그냥 편히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집과 수집품을 포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여기서도 변함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렘브란트 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청년기 이후로 계속된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불만하지 않고 신의 뜻을 잘 흡수하는 렘브란트의 근기는
이후에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조건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반영하는 예술의 창조로 이어졌으며,
그를 예술의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대가로 표시했습니다.
렘브란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예술가의 삶의 탄력성의 본질을 인식하고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환경을 포용하는 기술을 배웁니다.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기회를 포착하고, 용기를 가지고 어려움에 맞서고, 개인적인 고통을 창의성의 영역으로 돌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렘브란트의 유산은 역경의 길을 가로지르는 예술가들에게 위안과 영감을 동등하게 제공하는 등대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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